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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개발의 그림자, 구룡마을①] 판자촌 그늘에서 살아가는 주민의 하루

승인 2021.06.23 17:12
2021 인터넷신문 언론대상 공모전

[보도일시 2021.05.12 17:30]

[ⓒ투데이신문 출처 : 투데이신문(http://www.ntoday.co.kr) [출처] 본 기사는 투데이신문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www.ntoday.co.kr)]

외부의 시선을 통해 비춰진 구룡마을 주민들의 모습은 둘 중 하나다. 맹목적으로 재개발을 요구하는 욕심쟁이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절박하게 기다리는 불운한 빈민이거나. 그것이 마을의 일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깥에서는 애써 보려 하지 않는다. 구룡마을은 산업화 경쟁에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밀려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모여든 곳이고, 그것은 우리가 함께 만든 도시화의 그림자라는 것을 외면한다.

미디어에서도 구룡마을은 강남의 마지막 남은 노른자위 땅으로 그려진다. 아파트 불패 신화에 대한 기대는 이곳에도 투영되고 있다. 정부는 서울의 집값을 잡기 위해 세금, 대출, 공급대책 등 다양하고 강력한 규제를 내놨지만 거래절벽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강남 3구의 지난 3년간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3.3㎡ 당 2000만원 이상 상승했다. 현재 구룡마을 맞은편 40평 아파트의 매매가 역시 40억원을 호가한다.

산과 공원을 끼고 있는 구룡마을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면 어떻게 될까, 투기꾼들은 꿈에 부풀어 구룡산과 그 옆의 대모산을 바라본다. 구룡마을에 살아본 적도 없던 누군가는 폐허의 거리를 걸으며 돈 냄새를 맡았다. 지금도 몇몇 외부 사람들은 마을 협의체에 찾아와 쓰러져 가는 판자촌의 매매가를 묻는다.

또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이나 기업들이, 때가 되면 찾아와 생색을 내는 공간으로 구룡마을은 이용된다. 추운 겨울에도 따가운 햇빛 아래 땀을 흘리는 기부자들, 마을 곳곳 빼곡히 쌓여가는 검은 연탄들, 순박한 반가움에 악수로 맞아주는 주민들. 이들이 얻어가는 이미지는 주민들의 지친 삶의 모습을 프레임 안에 담아가는 것으로 등가교환 된다.

구룡마을 개발은 지난 2016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확정한 개발계획 수립안을 중심으로 시행사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서 추진 중이다. 계획대로라면 지난해에 임대 1107가구를 포함한 2692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어야 했다. 하지만 주민협의체들의 반대로 개발 추진은 표류했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으로 합의를 위한 회의마저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개발이 미뤄지며 주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막연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투데이신문>은 개발 추진과 함께 투기와 탐욕의 멍에를 함께 안아야 했던, 그러나 구룡마을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수십년간 서로 울고 웃으며 살아왔던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마을을 찾았다. 양극단 어딘가에 자리한 마을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구룡마을은 어떻게 투기의 대상이 됐고 한국사회 부동산 욕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곳에 투영됐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투데이신문 출처 : 투데이신문(http://www.ntoday.co.kr) [출처] 본 기사는 투데이신문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www.ntoday.co.kr)]


[투데이신문=박주환 기자] 그의 고향은 경상남도 어디쯤이다. 젊은 시절 상경해 안 해본 일이 없었고, 어렵게 일궈낸 사업이 망한 후 구룡마을에 들어왔다. 마을에 들어온 이후로는 고향으로 가는 발길을 끊었다.

가끔은 먼 곳 친구들이 서울로 올라와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을 집으로 초대한 적은 없었다. 스스로 이곳에 사는 것에는 거리낌이 없었으나 하루 묵을 곳을 나누기에는 초라하다 느꼈다.

그도 한때는 남부럽지 않게 세상을 향유했다. 어렵게 시작한 사업도 궤도에 올랐고 알 만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만한 곳에 집도 샀다. 무허가 판자촌이 가족의 보금자리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볼 이유도 없던 그런 삶을 살았다.

하지만 많은 비극이 그러하듯 불행은 평범한 어느 날 찾아왔다. 예고 없이 수개월에 걸쳐 가축병이 돌았고 사업도 타격을 입었다. 잇달아 터진 1997년 금융위기는 다시 일어서보려는 의지마저 무참히 꺾었다.

사람의 삶에 그래도 지붕은 필요했기에 구룡마을을 찾았다. 1990년대가 저물어 가던 어느 시절, 그는 600만원이라는 돈을 어렵게 마련해 마을에 들어왔다. 그렇게 과거를 묻고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20여년이다.

구룡마을에 들어온 후 그는 세상과 단절됐음을 통감했다. 마을 바깥의 사람들은 아무도 그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구룡마을에 적을 둔 순간 세상은 낙인을 찍었다. “우리가 너와 달라 참 다행이야, 우린 너희처럼 될 일은 없을 거야”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젠 그 편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지도 오래다. 누가 그를 어떻게 평가하든 삶은 살아야 했고, 몇 가지 불편함은 포기해도 인생은 그런대로 살아졌다. 다행인 것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비교할 필요가 없었단 것이다. 여유가 되면 누구든 음식을 나눴고 때로는 술과 함께 오후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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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와 저녁의 경계. 해가 남아있지도 않은, 그렇다고 완전히 넘어가지도 않은 시간이 되면 그와 그의 이웃은 연탄불을 때기 시작한다. 새 연탄을 때기 위해 타버린 연탄을 버릴 때면 가끔 알 수 없는 서러움을 느낀다.

서러운 마음에 골목을 걷다보면 마을 중턱에서 보이는 수십억원씩 한다는 아파트가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저 아파트는 분명 저기 있다지만 그곳에 가본적은 없다. 주변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고 하니 그렇게 믿을 뿐이다.

오늘 저녁 식사는 외부에서 지원해준 음식으로 해결했다. 마음 좋은 사람들이 때가 되면 쌀이니 간식이니 연탄이니 하는 것들을 지원해 준다. 주민협의체나 종교단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는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트로트 열풍이 한창인 TV를 끄고 방에 누우려는데 쥐 한 마리가 벽을 긁기 시작했다. 어제 나눠 받은 끈끈이를 붙였어야 했는데 잊고 말았다. 마을에서 키우는 고양이들도 사료에 길들여져 더 이상 쥐를 잡지 않는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빗자루를 들고 나가 벽을 치며 쥐를 쫓아냈다. 지난밤 깨어났을 때는 머리맡에 쥐가 있어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내 집의 쥐를 다른 집으로 보내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찜찜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쥐를 쫓아내고 방에 누우니 마을 전체에 적막이 가득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마을에 어느새 완벽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둠 속에서 양재대로 건너편을 바라보면 아파트 불빛들이 밤하늘의 별 같다. 대로변에서는 밤새도록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간헐적으로 개가 짖는다.

※ 이 기사는 구룡마을 주민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해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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